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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U CORSAIR

안녕 일게이들아.

일베간 산호해 해전을 보고 갑자기 함재기가 떠올랐고 그 함재기중에서도 최고의 성능과 멋을 지닌 F4U Corsair가 생각나서 몇자 적어보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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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주만 기습 일러스트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기습이 있고나서 미 해군은 A6M2 ZERO(CODE명 ZEKE)전투기의 성능에 충격을 받게 돼.

당시 미 해군의 주력 함재기는 F4F WILDCAT만으로는 제로 전투기에 대항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개발중이던 신예전투기들을 빨리 실천배치 하라고 제작사들에게 압박을 가하게 되지.

당시 와일드캣의 차기 기종으로는 F6F HELLCAT과  F4U Corsair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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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킬러 헬켓

헬켓은 와일드캣의 설계를 계승한 기체로, 완전히 새로운 설계방식을 적용시킨 콜세어보다 빠르게 태평양 전역에 등장해서 당시 '동양의 신비'라 불리던 제로기들을 도륙하기 시작하지.

콜세어는 당시 함재기로 개발되었지만 항모에서의 이착함과정에서 문제가 많아서 실전데뷔는 태평양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나 등장하게 되지.

미해군은  주력전투기이던 F4F 와일드캣의 성능이 앞으로 몇 년내에 일선기로서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1938년 2월 새로운 함상전투기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어. 이에 VOUGHT 社(콜세어의 제작회사)는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한 신예 전투기의 개발을 추진하기로 하고 미해군의 프로젝트에 뛰어들기로 했어. 라이벌이던 그라망사는 F4F의 설계를 발전시키는 형식으로 차기 전투기를 개발하기로 한 상태였고.

콜세어는 혁신적인 역갈매기형의 주익을 도입했어.

이것은 주익의 강도를 강화시키며 항력을 감소시키는 장점이 있었으며 조종사들의 하방시야를 향상시키는 효과도 있었지.
더구나 해군기의 특성상 바다로 착수하는 경우에도 주익의 굴곡부위가 먼저 물에 닿기 때문에 좀더 안전하다는 장점도 부각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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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갈매기형의 주익을 지닌 콜세어.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함재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 바로 이착함에 큰 결함이 있었어. 항모에서 출격은 가능하지만 착함이 문제였어 항모에 착함할 땐 단순히

통상적인 활주로마냥 내리는게 아니라 '어레스팅 후크'라는 걸쇠를 이용해서 착함을 해야하는데 콜세어는 이 어레스팅 후크에 잘 걸리지않아 바다로 꼬라박기 일수였던거지. ㄷㄷ

해군당국은 이렇게 뛰어난 성능을 지닌 기체를 그냥 썩히기는 너무나 아쉬워서 해병대에게 지급하기로해. (역시나 미군도 해병대는 ㅜ.ㅜ)

 1942년 9월 7일 드디어 해병대는 이 신형 전투기를 수령할수 있었으며 미해병대 제 124 전투비행대가 최초로 콜세어로 장비하는 영예를 얻었어.

이 비행대는 1943년에 과달캐널에 전개하면서 일본기들과의 전투를 벌였으며 케네스 월쉬 대위가 최초의 콜세어 에이스로 등록하는 등, 전선에 모습을 나타나자마자 맹활약 했지.

한편 이 비행대의 조종사들은 콜세어가 그들이 전에 운용하던 F4F 와일드캣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우수하며 해군이 사용하는 F6F보다도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어.

미 해병대는 와일드캣에서 콜세어로 전투기를 지속적으로 교체해 나갔고 '검은양 비행대대'로 유명한 그레고리 페피 보잉턴이 등장하게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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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격 전 임무 지시를 하는 그레고리 페피 보잉턴 (가장 왼쪽)

이후 콜세어는 항모에서의 이착함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고 마침내 F4U-1D/C형이 탄생하지.
우선 조종석을 약간 높게위치시키면서 캐노피의 플레임을 제거하였고,

여기에 후미 랜딩기어를 연장시키는 방법을 혼합해서 지상활주시의 전방시계를 향상시켜 항모에서 이착함시 조종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우측 주익에 작은 스포일러를 설치하여 착함시 낮은 속도에서 실속이 발생할 때 한쪽으로 기우는 현상을 없앴어.

물론 메인 랜딩기어도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가 도입되어 착함시 튀어오르는 현상을 없앴고.

이러한 개량은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내어 콜세어는 이후 시행된 엄격한 착함 테스트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게 되었지.

드디어 미해군은 콜세어를 함재기로 탑재하도록 승인했으며 이것이 바로 태평양 항공전의 주도권을 완전히 미국쪽으로 돌려 버리게 되는 순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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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U-1D/C

여하간 대전이 끝나자마자 폐기되거나 다른나라로 공여되다시피한 대부분의 2차대전 전투기와 달리 콜세어는 미공군의 P-51과 함께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7년간이나 더 살아남아 한국전쟁에서도 미해군의 주력 전폭기로서 계속 맹활약했어.(실제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등장하지. 격추당하는 모습으로 ㅠㅠ)
이때 미해군이 대전후 남아도는 잉여분의 F6F 헬캣같은 경우에는 무선유도 방식으로 폭탄을 가득 싣고 적진에 뛰어드는 자폭용 무기로 사용한 것과 비교한다면
콜세어는 미해군 조종사들에게 여전히 매우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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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에서 작전중인 콜세어. 뒤에는 2차대전에는 없던 헬기가 보이지.

일본해군의 가장 우수한 제로 전투기도 콜세어와 공중전을 펼치기에는 속도, 화력, 방호력, 최대 상승 고도에서 모두 크게 뒤떨어 졌어.
물론 기동성에서야 제로가 더 우월했지만 제로가 한 바퀴 선회할동안 이미 멀찍한 고도로 올라가 버린후 맹렬한 속도로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다시 돌진해오는 콜세어는 일본 조종사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존재였지.

일본 육군항공대가 사용한 전투기중 전반적으로 가장 우수한 성능을 가졌다고 하던 신예기 Ki-61 히엔 같은 경우도 Bf 109E와 비슷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시 콜세어와의 공중전에서는 전반적으로 열세에 몰렸다고 해.
특히 고속 강하시에 주익의 공기 흡입구에서 발생하는 찢어지는 듯한 특유의 금속성으로 인해서 일본군으로 하여금 '죽음의 휘파람 (whistling death)'이라는 별명을 붙이게 만들었어.

반면 이전투기의 유려한 역갈매기형의 주익은 전투기로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아름다운 미인을 연상시킨다 하여 미군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오끼나와의 연인'이라는 애칭을 부여받게 되지.

재미있는 것은 미인기라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콜세어의 강력한 엔진에서 발생하는 심한 토크 때문에 경험이 적은 소위계급의 신참 조종사들이 이륙시에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하여 '소위 제거기 (ensign emiminator)'라는 별명도 붙여졌어.

유럽전장의 독일 전투기들에 비해서 훨씬 수준이 낮은 일본기들을 상대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중전에서 2140나 되는 적기를 격추시키면서도
189기밖에 안되는 콜세어를 잃었다는 놀라운 격추교환비 (11.3 : 1)는 헬캣의 19 : 1에 이어 2위의 기록이야.
(헬캣의 교전기회가 워낙 많았으므로 꼭 수치상의 비교는 의미가 없을지도..)

전후에 미해군의 평가에 의하면 콜세어는 P-38, 39, 40, 47등의 미육군 항공대의 전투기들과의 1:1로 모의 공중전 테스트를 해본결과 이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우세한 공중전 성능을 보였으며, 미육군항공대 최고의 전투기인 P-51D와의 모의 공중전에서도 고도 13000피트에서 머스탱과 거의 대등한
공중전 능력을 보였고 이보다 높은 고도에서는 오히려 콜세어가 머스탱을 압도했다고 해.

게다가 노획된 독일 최고의 전투기 Fw 190과의 비교에서도 대등하거나 우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지. 물론 이런 모의 공중전 결과만을 가지고 성능을 논하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부 전사가들은 콜세어야말로 2차대전 최우수 전투기중 한가지임에 틀림없으며
이 우수한 기체가 유럽전선에 투입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후일 1969년 7월에 축구경기가 계기가 되어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서 머스탱과 콜세어의 한판 승부가 벌여졌는데 결국 콜세어가 머스탱을 제압한다고 해.



프롭기는 전투기의 세대 구분에서 아예 열외당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프롭기도 세대 구분이 있었으면 좋겠어.
비록 지금은 현역에서 뛰지는 않지만 2차 세계대전에 등장해서 전장을 누볐던 콜세어! 다시 한번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실제로 봤으면 더이상 바랄게 없겠다.



참고 및 사진- 불타는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