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2차세계대전만큼 많은 항공기가 한꺼번에 몰려 싸운 적은 없었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한창인 1940년대 중반에는 전 세계를 합쳐 말 그대로 수만대의 각종 비행기가 나타났다 사라졌고
지상에서뿐만아니라 하늘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지
특히 2차세계대전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쟁의 승부를 가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첫 번째 전쟁이기도해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승리를 거머쥔다는 말은 이때부터 생긴말이야
실제로도 2차대전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전쟁에서 배트남전을 제외하고 모두 공군전력이 우세를 보인 국가가 승리했지
아무튼2차대전 공중전의 규모가 큰 만큼 그 공중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무수히 쏟아져나왔는데 우린 그들을 에이스라 불러
에이스는 통상 기종에 관계없이 5대를 격추한조종사에게 부여되는 칭호야
그들중 상위 1%를 슈퍼에이스 또는 격추왕이라 부르는데 말그대로 공중전의 천재들이야
불행히도 2차대전은 이런 슈퍼에이스들까지 무더기로 배출해버려 그래서 여기서 다 소개할 순없고 인상깊은 몇 명만 뽑아서 소개해보려고해.
처음써보는거라 난잡한데 열심히쓴거니까 끝까지 읽어줬음 좋겠어.
5.
“리차드 봉은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AT-6을 탑승하고 최신형 전투기인 P-38기와 공중전훈련을 한 적이 있었죠.
그때 그는 느려빠진 AT-6를 몰고 P-38의 꼬리를 연신 잡아댔는데 당시 P-38의 조종사는 리차드봉을 자신의 6시 방향에서 떼 낼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이름: 리차드 봉
국적: 미국
격추수 : 총40대
리차드봉은 미국 격추 1위의 슈퍼에이스야
아래에서 보면 알겠지만 추축국 조종사들에 비해 좀 초라할거야?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게 조종사가 부족한 독일과 달리 미국은 조종사가 넘쳐나서
내노라하는 에이스들은 전부 미국본토로 불려가 전쟁 홍보책자나 전쟁관련 판촉물들 광고 같은 것에 출현하거나 귀빈들을 만나고 다녀
한마디로 영웅행세를 하는거지.
조종사 부족이 극심했던 독일은 에이스들을 후방으로 빼놓지 않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계속 출격시켰던 탓에 격추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거고.
하여튼 리차드봉은 자신의 애기 p-38 J 라이트닝에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애인 Marge의 노즈아트를 큼지막하게 붙혀놓고 출격했던 걸로 유명해
미국격추 1위의 에이스답게 미국인들은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미국 위스콘신에 있는 비행장을 리차드 봉 공항으로 이름지었어
그의 고향마을에 있는 고등학교에는 리차드 봉 기념관이 세워졌고
거기에는 그의 전투복과 그가 받은 훈장들과 사진 뉴스 기사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가 격추시킨 일본기의 잔해까지 보관되어 있다고 해.
제로에게 일격을가하고 신속하게 빠져나가는 리차드봉의 p38라이트닝.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나란히...
4.
만약 누구든 핀란드를 침략한다면, 핀란드인들은 절대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적에 대한 분노로 똘똘 뭉칠것이고, 절대 항복할지 않을 것이다."
-일마리 유틸라이넨-
이름 : 일마리 유틸라이넨
국적 : 핀란드
복무 및 격추기록 : 94기 공인 격추(34기 비공인 격추, 도합 128기)
내가 4번째로 좋아하는 조종사야 막강한 소련에게 한낱 날파리 같았던 핀란드가 이렇게 고군분투하면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데 엄청난 일조를 한 조종사지.
심지어 적국인 소련조종사들마저도 그를 존경했다고해.
유틸라이넨은 어렸을때부터 시골 출신의 사냥꾼인 아버지와 함께다니면서 사냥을배운 사냥꾼이었어
전쟁이 터지자 스스로 공군에 자원해서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는데
이때 몸에 밴 사냥 습관과 신중한 성격이 그대로 전투기 조종과 연결되면서 92기라는 격추수를 기록한 기반이 되었던것같아.
하지만 본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92기라는 격추수가 아니라 동료기를 단 한 번도 잃지 않았다는 것이래
그와 함께 출격한 그 누구도 격추당하지 않았으며,
유틸라이넨은 항상 자신의 윙맨이 위기에 처하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뛰어들어 동료를 구해냈다해
금욕적이고 겸손한 성품의 유틸라이넨은 적기가 전투불능에 빠지면 그들을 그냥 보내줬고.
이 때문에 적인 소련 공군에게도 존경을 받았다고 하며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자 핀란드를 방문한 한 소련 공군 장성은 다른 사람들을 다 제쳐두고 유틸라이넨에게 다가가며
"가장 위대한 파일럿을 만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더라.
독일군의 에이스들이 온갖 수난을 다 겪어야했던 것에 비하면 천지차이의 대우임에는 틀림없어.
유틸라이넨이 전쟁초에 탑승했던 F2A버팔로
대전 초기때의 전투기라 아직 1차대전 복엽기형태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나중에 유틸라이넨은 최신형인 독일제 BF109G2형을 탑승하게되는데
109와 그는 무척 죽이 잘맞아서 그뒤로 그의 격추기록은 더욱더 승승장구하게된다.
3.
1942년 9월까지 영국전투기만 158기 격추(당시 영국전투기였던 스핏파이어는 세계최강의 성능을 자랑했음)
1942년 9월 1일 하룻동안 17기 격추
10분 동안의 전투에서 8기를 격추
1942년 9월 첫주의 1주일간에 38기 격추
독일 최고 훈장인 다이아몬드 백엽검 철십자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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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
국적: 독일
격추: 158기
인류역사상 이사람보다 조종실력과 사격실력이 뛰어났던 조종사는 없었어.
에리히하르트만이 bnz처럼 고도차를 이용한 치고빠지기의 달인이었다면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물리학 법칙을 뛰어넘는 듯한
말도 안되는 기동술과 두세 발의 탄환만으로 적기의 앤진 부위를 정확히 맞추는 기가막힌 사격술을 동시에 보유한 공중전의 천재중의 천재야
마르세이유가 단신으로 8기의 적기와 홀로 싸울 때
동료기는 그를 도울 생각은커녕 그의 기동술을 멍하게 바라만 봤다지.
하지만 마르세유는 1942년에 불의의 사고로 22세의 나이로 죽어
그는 메셔슈미츠 BF109F4형을 가장 좋아했는데
109시리즈 중에선가장 기동력이 뛰어나 화려한 기동을 펼치는 마르세이유는 유난히 이 버전의 109를 좋아했어
하지만 갈수록 더 빨라지는 연합국 폭격기에 대항해 기동력을 버리고 화력과 속도를 보강한 BF109G2를 탑승할 수밖에 없게되
결국 G형을 타고 출격하는데 하필 출격첫날 갑작스럽게 앤진에 이상이 생겨추락해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아 비운의 조종사지.
아마 전쟁끝까지 살아남았다면 에리히 하르트만을 재쳤을 유일한 조종사라고 생각해
마르세이유의 황색 14번기일러스트 허리케인전투기가 피탄되어 추락하고있다.
영국p40워호크전투기와의 전설의8:1공중전 마르세이유는 10분만에 이들 모두를 격추한다.
2.
“비행은 마치 수영과도 같은 것입니다. 쉽사리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지요. 10여 년 동안 비행을 해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오른손에는 조종간이 , 왼손에는 스로틀 레버가, 발에는 조타 페달이 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만약 일본이 다시 저를 원한다면, 전쟁이 일어나 다시 비행을 시킨다면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이유로 제가 다시 하늘을 날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름: 사카이사부로
국적: 일본
격추대수: 64기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가미카제의 임무를 받고 출격하고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결국엔 명령을거부하고 함께 가미카제 임무에 참여한 부하 2명까지도 살려온 일본군슈퍼에이스지
우리가 그렇게 종이비행기라고 쓰레기처럼 까대던 제로기를 타고도 64기의 연합군 전투기를 격추한 장본인이기도하고
또 당시 연합군 최고의 에이스 퍼기 서덜랜드와 1:1로 격렬한 공중전을 벌여 승리한 유명한 일화도있는데
그의 회고록에는 퍼기가 와일드캣이 아니라 좀 더 성능이 좋은 헬켓을 타고 있었더라면 자신이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쓰는 등 겸손까지 갖춘 조종사야.
더 놀라운 것은 사카이사부로는한쪽 눈이 안보이는 애꾸눈이라는거야
전쟁중반에 사카이는 후방총좌가 달린 돈틀리스 급강하폭격기를 순항하고 있는 와일드캣으로 착각 방심하여 접근하다가 후방총좌에 피탄당해 한쪽눈을 잃어
하지만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조국을 위해 전쟁이 끝날때까지 싸우지.
전쟁이 끝난 후에 그는 인쇄공장을 차려 해군시절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인생관을 담은 책들을 출판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대공의 사무라이야
이 책은 세계각국에 번역되어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는 미국에서 일본군에대한 인식을 바꾼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도 이라크에선 이 책을 공군필독서로 읽게할정도지.
사카이는 2000년 9월 22일에 아츠키 미군기지에서 개최된 미해군 서태평양함대사령부 50주년 기념만찬에 빈객으로 참가해 식사 후 돌아가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하여튼 전후에 인쇄사업에성공후 영화에도 출연하고 마이크로 소프트의 컴뱃 플라이트시뮬레이션2개발이 참여하는등 일본군이긴 했지만 존경할만한 조종사지.
사카이사부로의 애기 미쓰비시 a6m5 제로
F4U콜세어를 쫒는 제로기에게 일격을 가하고있는 F4F와일드캣일러스트
대공의사무라이 한국어번역판 현재소장중...
이제는 늙어버린 사카이 사부로. 그는 전쟁때 한쪽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
1.
'확실한 사격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서 고도차를 이용, 단숨에 적기가 시야에 꽉 찰 때까지 접근한다. 이 때 도망칠 수 있는 적기는 없다. 이 상태에서 적기에게 총탄의 비를 퍼붓는 것이다. 적기의 회피동작은 전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이런 근거리에서는 탄환의 파괴력도 가장 크다. 그리고 탄환도 절약할 수 있다.‘
이름 :에리히 하르트만
국적 : 독일
격추기록 : 공인격추기록 총 352대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사람으로 유명해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총 1400회 출격해서 800회의 공중전을 벌였는데 죽을 확률이1%만 되도100회 출격하면 한번쯤은 죽기 마련인데
정말 엄청난 기록이지(역사학자들은 실제 격추수는 352대보다 더 많을 거라고 해당시독일의 격추인정절차가 엄청나게 까다로웠거든)
전쟁중에는 하르트만의 검은 튤립기체가 워낙 악명이 자자해서 적국조종사들은 이 기체만 보면 도망가기 바빳다고해
적기가 교전을 벌이지 않고 도망만가니까 하르트만의 격추기록이 너무 더디게 올라가는거야
결국 이 검은 튤립 109를격납고에 모셔두고일반 109를 타고 적기를 학살하기 시작했지.
에리히 하르트만은 1942년 처음 전선에 투입된 후 최초 8개월 동안 공중전에서 19세의 나이에 30대를 격추시켰으며 다음 10개월 동안 95대를 격추시켰고 1944년 3월에는 200대, 7월에는 250대를 기록하였지 1944년 301대를 격추, 1945년 352기를 격추시켰고. 그는 352기를 격추하는 기록과 총 1425회의 출격에 800회의 공중전을 치르는 동안 한 번도 함께 비행한 동료 조종사를 희생시키지 않는 기록도 수립했다고해
하르트만의 애기 Bf-109G에는 기수 부근에 검은 튤립이 도장되어 있어 소련 공군은 하르트만을 우크라이나의 검은 악마라고 불렀으며, 스탈린은 하르트만을 인민의 적이라 칭하기도 했어
하르트만의 격추기록은 2차대전 유럽전선의 종전일인 1945년 5월 8일 Yak-11 1기 격추를 끝으로 마감되.
2차대전에 있어서 하르트만 최후의 임무는 JG52의 잔존기에 대한 파괴임무였는데
JG52잔존기를 파괴한 후 미군에 항복했으나 미군은 소련군과의 협정에 따라 주로 동부전선에서 종군한 하르트만과 JG52생존자 전부를 소련에게 인도해버렸어.
그는 종전 후에도 석방되지 못하고 10년 동안 연구 대상 인물로 각종 인성검사, 심성검사 및 심문을 받으며 가혹한 강제수용소 생활을 보냈지 ㅜㅜ
1955년 10년 반 동안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온 하르트만은
독일의 공군 조종사로 복귀하여 JG71 리히트호펜 비행대에서 F-86 세이버를 조종하며 1967년 대령까지 진급했었어.
그리곤 1970년 독일 공군에서 퇴역한 하르트만은 조용한 노후생활 을 보내다 1993년 9월 뇌종양으로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되.
하르트만은 전쟁이 끝날때까지 오로지 이 BF109시리즈만 탑승하였다.
300기 격추달성후 귀환하는 하르트만을 환영하는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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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 쓰느라 너무 힘들었음
원래 10명정도 소개하려고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줄이고줄여 5명만 추려냈어.
재미있게 읽었길 바래
마지막으로
노 인 학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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