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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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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음악을 상징하는 상징적 존재였다. 핑계,잘못된만남,스피드까지 초연속 밀리언히트
를 기록하여 불멸의 기록을 세운가수였다 하지만 오늘날 김건모는 과거의 영광과 달리
챠트10위권에 자기음악을 올려놓기 힘들정도로 존재감이 많이 사라진 가수가 되었다.
자신을 스타로만든 김창환과 갈라선 이후로 내리막을 걸었다.2천년대 들어 더이상 정상급 가수는
아니였다. 2001년 '미안해요'로 마지막 1위를 하고 그뒤로는 1위를 한적이 없다.
타고난 천재성이 있는 가수였지만 바뀌어가는 생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옛날가수다
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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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후반부터 2천년대 초까지 가수로 그가 쌓은 커리어는 높았다. 앨범만 내놓으면
타이틀곡부터 후속곡까지 전부 다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솔로가수로서 거기다가 영화배우까지
겸업하는 가수치고는 상상할수없는 팬덤과 인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여성팬이 더많았다.
하지만 본인이 영화에 전념하겠다며 가수활동을 고사하고 은퇴하였고 서서히 잊혀졌다
5년만에 발라드곡 '오랜만이야'라고 복귀했지만 예전같은 성원을 얻을수는 없었고 팬들도
가수 임창정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현재는 다시 영화배우로 전념하고있다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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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의 황제는 있었지만,여제는 없었다. 이수영은 바로 발라드 여제다 그정도 수사를 달면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가수였는지 실감할것이다. 한때 연말 가요대상을 휩쓸고 다니고 자신의
발라드로 도심을 마비시켰던 이수영. 그녀는 데뷔곡 I BELEIVE 부터 작곡가 MGR과 영혼의
계약으로 마력과도 같은 발라드를 힛트시켜냈다. 오리엔탈풍의 멜로디위에 이수영의 가창력이
더해져 한편의 영화를 본것같은 황홀함을 안겼다. 하지만 이수영은 MGR과는 덩그러니 를 끝으로
더이상 작업을 하지않았고 황성제 와 또다른 시너지효과를 누렸다. 단언하지만 이수영의 추락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MGR을 떠나면서 그녀의 색이 지워진것같다는 평가는 부인할수없을것이다. 이후
황성제와 작업한 휠릴리가 성공하며 그녀의 성공가도가 이어져 갈것같았으나 불행히도 여자가수로는
치명적인 폼의 저하도 따라오고 있었다. 30대를 넘어선 그녀의 목소리에 청아함은 사라졌고 호소력으로만
예전의 영광을 찾을수없게됬다. 최근 나는 가수다 시즌2에 나와 광속탈락을 하던 그녀를 보면
그녀를 구원해줄수있는건 MGR과 다시 영혼의 작업을 같이하는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김현정
김현정.jpg

??  얘가 여기 낄 수준이돼? 라고 묻는다면 90년대 이후 출생이라고 잘모를수도있다. 하지만
김현정은 한때 분명히 정상급 가수였다. 축구선수로 치자면 2년만에 커리어 다찍고 내려온 선수라고
보면된다. 사실 가능성이 정말 많은 가수였다. 김현정의 등장은 가요계에 자극이였다.지금은 8등신 롱다리
미녀가수로만 알려져있는 김현정은 사실 데뷔당시 그녀의 키보다 가창력으로 주목받던 가수였다.빠른
템포의 댄스곡에서도 시원 시원한 고음을 무기로 무대를 압도했던 가수로 소찬휘와 함께 파워풀한고음역에
절대적인 가수였다. 특히 2집 되돌아온 이별은 엄청난 힛트를 기록하였다 . 하지만 3집 떠난너로 활동할시
활동에 지장을 줄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하며 공백이 발생하였고. 방송활동이 부족한 덕분에 3집은
실패하고 만다. 그이후 다시 재기를 꿈꿨지만 이미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무장한 여가수들이 늘어나면서
희소가치를 잃었고 가창력이 퇴하여 창법을 바꾸고 빠른 템포의 곡으로 바꾸고 오히려 더 추락하게된다
여전히 성형과 다이어트등으로 변화를 노리고있지만 더이상 예전의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듯하다
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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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장은 메가톤급 충격이였다.데뷔당시 비,리치등과 함께 가장 기대되는 신인으로 주목
받은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다소 생소했던 흑인풍의
음악을 제대로 소화할수있는 재능을 가진 가수였다. 특히 그의 배경에는 힙합음악의 yg와
r&b음악의 엠보트등을 자유롭게 오가는 경험이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질적성장을 거듭하게했다.
휘성의 앨범은,진정한 명반이였고 3집 불치병까지 절정을 이뤘다. 그러나 음악적 이해관계
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휘성은 YG의 적을 파하였고. 본인이 하고싶은 음악과 외도를 자유롭게
얻었다. 그러나 결국 그판단은 미완에서 끝이 나버린 전설이였다. 이후 달라진 그의 음악에 대한
대중의 외면과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여러가지 사건으로 결국 그를 추락하게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재기는
정상권 가수로서 힘들어보인다
조성모


김광수의 황태자,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로 폭발적 푸시를 받으며 데뷰하여 얼굴없는 가수라는 신비정책으로
최고의 톱스타가 되었던 조성모,그가 앨범을 낸 해는 그해 가요대상은 그의것이라고 했을정도다
투헤븐,아시나요,가시나무등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를 내놓은 만큼 그 뮤직비디오에 준하는
성공을 거두던 가수였다 연전연승을 해오던 조성모는 05년 미스터플라워에서 처음 흥행에 실패하면서
상당한 데미지를 입게된다.그이후 추락이 시작됬다. 그리고 06년 공익근무 복무로 2년간의 공백이 오면서
기본적인 가수로서의 감각과 폼이 떨어졌다.복귀 앨범은 챠트에 더이상 올라가지도않았다 그는 제대후
20K가까이 체중을 감량하는등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미지변화를 노렸지만 음악적 한계와 재능의 한계로
추락을 거듭중이다.

버즈  

말그대로 쌈자신이다. 아이돌이 없었던시대 . 03-07년 그들이 곧 아이돌이되었다. 철저히 음악성으로 무장하겠다며
1집은 연예활동없이 어쩌면과 모놀로그등을 힛트시키며 90년대 중반이후 끊겼던 락발라드의
부활을 이끌었다. 사실 이때 버즈노래 노래방에서 한번 안 불러본 남성이 없었을정도로 남성들의
사랑도 받는 밴드였다. 10대와 20대의 적극적인 인기를 얻으며 SG워너비와 함께 음악으로 사랑받는 진정한
아이돌이였다.특히 05년때 버즈의 전성기는 다시금 락음악의 부활을 이끌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부 멤버의 군입대와 보컬 민경훈의 솔로 활동부진과 군입대로 사실상 버즈는 해체수순을 밟게된다.
결국 그들의 밴드음악의 계보는 FT아일랜드와 CN블루가 이어가게 됬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sg워너비
지금은 차고 넘치는 양산형음악과 양산형보컬의 정형이 이들로 인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가장 이상적인 '가수'의
모습을 제시했었다. 철저히 음악성으로 중무장하여 비쥬얼위주의 아이돌그룹을 압도했던 그들이였다. 그리고 가장 넓은
연령층을 당시의 주류음악으로 이끌었다.지금 주류음악인 아이돌에 10,20대만 호응하는 모습과 달리
당시 주류음악을 이끌던 SG워너비는 중년의 남성과 여성에게도 인지도가 있고 인기가 많았던 그룹이였다
상당히 기념비적인 업적이 많은 가수였다. 노래 잘하는 가수가 조명받던 황금기 시대를 이끌었다. 이때
바이브,브라운아이드소울,엠씨더맥스,엠투엠같은 그룹들이 재조명 받게되었다 그 중의 갑이였다.
거칠게없었던 그들이였으나 리더였던 채통하가 탈퇴했고 이석훈이 들어오면서 음악적인 변화를 시작할때
음악시장은 새로운 방향으로 개편이 되기 시작했다. 실력파 가수보다 후크송으로 무장한 디지털음악의
시대가 도래했다. 실력파가수들의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시작된것이다.정통성과 변화속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던 SG워너비는 정통성을 택하면서 국악과 자신들의 음악을 접목하는등 순차적인 변화를 시도
하였고 호평을 받았으나 대중적인 음악으로서의 성공과는 온도차를 두게됬다. 제목처럼 재활이 불가능한게
아니라 시대가 다시 돌아오지않는 이상 더이상 과거의 영광은 있기 힘들다